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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바틀비라는 이름의 창백한 젊은 필경사가 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 필경사는 통상 2절지(100단어) 당 4센트의 임금을 받고 나를 위해 필사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필사한 사본을 검토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면제받고 그 의무는 훨씬 더 빈틈없다는 칭찬과 더불어 터키와 니퍼즈에게 전가된다는 것, 게다가 앞서 말한 바틀비는 어떤 종류건 아무리 사소한 것이건 심부름은 결코 보낼 수 없다는 것, 설령 그런 일을 맡아달라는 간청을 받더라도 그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렇게 안 하고 싶을' 것임을, 달리 말하면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할 것임을 모두들 양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69 페이지 중

부동산 양도증서 작성을 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바틀비는 필경사다. 하지만 자기가 한 필사에 대해 검토하는 작업을 거부한다. 그의 첫 '거부'는 그것으로 시작되는 데, 그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는 바틀비가 유일하게 하루 중 하는 말이 된다. 고용인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변호사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 믿을 수 없는 일에 거절의 이유라도 듣고 싶어 왜 거절하는 것인지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사무실 의자에 앉은 이후로 퇴근 할 때까지는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낀다거나 휴식을 취하는 일은 하지 않는 바틀비는 자신에 관한 어떤 일도 말하길 거부한다.
그 어떤 합당한 이유라거나 자세한 답변도 끝내 바틀비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바틀비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그 사무실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인 필사하는 일 마저 하길 거부한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가 왜 거기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목걸이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짊어지자니 괴로운 연자맷돌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 80페이지 중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간 바틀비에 대한 행방은 어느 날 변호사에게 날아온 쪽지를 통해 전해지는 데, 바틀비가 현재 부랑자로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다는 내용. 변호사는 사식업자에게 바틀비에게 가능한한 최고의 사식을 넣어주라고 부탁하지만 바틀비는 먹는 걸 거부한다. 어느 날 바틀비는 구치소 안 뜰에 모로 누워 죽어있는 채 발견 된다.

'쓸모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바틀비는 그렇게 그런 모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로 '자연'스럽다.
나중에 알게된 바틀비의 전 이력은 배달불능 우편물 취급소의 말단직원 이었다는 것인데, 받을 사람 없는 우편물을 폐기하는 일을 했던 바틀비 자신도 결국 용도를 더 이상 잃어버린 상태로 그 스스로를 폐기하게 된 것이다.
생산 보다는 소모를, 창조 보다는 파괴를, 유능 보다는 무능을 택한 것은 일견 자기 의지에 의한 선택 같아보이지만, 그것은 그것자체로 운명이 되기도 한다. 저 도저한 흐름에 당최 따를 수가 없어지게 되는 시점. 그 때는 우리 모두 바틀비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갈 곳을 잃어버린 우편물처럼.

우리 모두 어떤 것은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살아가지만, 그렇게 애써 부여잡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까딱하면 놓치기 매우 쉬운 허술한 것이라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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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심하는 나
"그러면 백악관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군요."

"이 사람이 정말 사태 파악 못하시네. 당신이 정말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소? 범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고? 질병, 실업, 전쟁, 아니면 다른 사회적인 질환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소? 절대 아니지. 그나마 바랄 수 있는 건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 문제들을 관리해 주는 거요. 이런 건 냉소주의가 아니라 성숙이라고 부르는 거요. 비를 멈추게 할 순 없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붕을 만들어 놓고 새지 말라고 빌거나, 아니면 최소한 우리에게 표를 던질 사람들은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거지." -99 page.

정확한 시점은 나오지 않는다. 좀비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20여년이 지난 시점. 이 인터뷰는 세계각국에서 이 전쟁을 다양한 자리와 직업을 통해 겪은 사람들의 회고들로 채워진다.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아니 발견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어느 마을의 일화부터 일종의 위약을 팔아서 한 몫 챙기는 사람, 피난을 위한 시간을 벌기위해 인간미끼를 세워두는 정치인의 일화 등 좀비와 맞딱드린 사람들의 다종다양한 모습들이 나온다.
좀비물이야 영화로는 많이 보고 게임으로도 접해본 적이 있지만, 책으로 이런 좀비물을 읽은 적은 처음이었다. 오히려 책과 영상매체가 다른 점이라면 좀비물이 가진 좀비의 형상에 대한 혐오보다는 그 반대에서 좀비의 모습을 보고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가 되는 것이었다. 시각적인 자극이라는 면에서 봤을 땐 좀비물의 주인공은 어찌보면 최대한 혐오스럽게 연출된 좀비일 수 있다. 하지만 상상에 의존하는 '글자좀비'들은 그저 영화에서 봤던 좀비들의 흐릿한 기억의 재현일 뿐 충격까지의 상태로 사람을 몰고 가게 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더 유의해서 보게되는 부분은, 그리고 유의해서 보게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좀비와 맞서는 사람들이다.

인간들은 주위가 초토화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또 이렇게 전 지구적인 스케일로 좀비전쟁을 묘사하게 되면 각국의 기존 정치적 지형은 어떻게 형성될런지가 '드디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위의 인용한 것과 같이 어떤 구세주라거나 '슈퍼파워'를 염두해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엄청난 고난에 처한 그것도 동시적으로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난에 처한 인류를 상상해보고 그게 어떤 의미 일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헐리웃 영화처럼 특공대 하나가 나와서 좀비들을 싹다 정리해버리고 그런 거 없다. 그리고 정의롭지 않은 위정자들은 '관리'를 할 뿐 '해결'을 능력도 생각도 없다.
지지부진하게 상황은 진행되고, 좀비들은 "식량도 필요 없고, 탄환도, 연료도, 심지어는 마실 물이나 숨 쉴 공기도 필요없"는 상황에서 인간들과 맞선다. 
너무나 압도적인 적, 너무나 깨지기 쉬운 인간들의 평화.
평화로운 시기, 문명사회에서 잘 나가던 회계사,변호사,펀드매니저는 못질 하나 못하고 창문에 유리도 못 갈아끼우는 무능력한 신세가 된다.  

"좀비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 뇌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게 아이러니요. 좀비란 게 한 무리로 모아 놔도 딱히 공동의 두뇌라고 할 만한 게 없잖소. 지도부도 없고, 명령계통도 없고, 이렇다 할 의사소통이나 협력도 전무하고. 암살해야 할 대통령도 없고 칼로 난도질해 버리고 싶어도 쳐들어갈 본부 은신처도 없어. 좀비 하나 하나가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자동화된 부대이고 이 마지막 이점이 이 전투의 본질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거요."-426page

P.S.
코맥 맥카시의 '로드'가 이런 대재앙에 맞서는 사람들의 내면에 초점을 뒀다면,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위를 날라다니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굳이 비교하자면 '로드'가 인간극장이면 '세계대전Z'는 뉴스데스크 또는 CN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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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심하는 나